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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황사영 알렉시오'가 쓴 '황사영 백서(帛書)'의 내용
  • 등록일2026.02.11
  • 조회수70

백서(帛書)'비단에 쓰인 글'이라는 뜻입니다.

 

 조선시대 천주교회 평신도였던 '황사영 알렉시시오'가 작성한 백서의 내용에 대해 일부 정확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당시 조선을 정치적으로 전복시키려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황사영 백서'


서양의 군대를 끌어들여 나라를 전복시키려 한 것이 아니라,

서양의 군함과 병사들이 무장하고 조선 해변에 와서

조선에 천주교가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조정에 압박을 가해 달라고

북경 교구장인 구베아 주교에서 요청하는 내용이 일부 포함된

12213,384(200자 원고지 67장 분량)의 서신입니다.

 

하느님의 종 황사영 알렉시오 가 작성한 '백서'의 주요 내용과 그분의 일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황사영 백서의 주요 내용


첫째,

--> 인사말에서는

백서의 작성 동기,

, 박해를 직접 경험한 그가 구베아 주교에게 박해받는 조선 교회를 빨리 구해달라고 요청한 내용입니다.


둘째,

--> 신유박해의 진행 과정에서는

1795년부터 18012월 말까지 박해의 진행 과정을 정치사, 교회사적으로 서술하였습니다.

조선에 입국하여 사목 활동을 한 중국인 주문모 신부에 대한 1795년 실포 사건,

1799년 청주에서 일어난 박해,

최필공에 대한 정조의 회유 지시와 형조에서 신앙 고백,

이중배의 1800년 부활절 축하 행사와 옥중에서의 의술 활동,

그리고 권철신 가족의 신앙 생활과 양근군수가 내린 체포령,

정조가 비밀리에 주문모 신부를 체포하여 처리하려고 하는 과정에 발생한 각지방의 박해,

이어 배교자인 김여삼이 신자의 재산을 노려 주문모 신부를 밀고한 사실 등을

아주 구체적으로 사실에 근거하여 서술하였습니다.


셋째,

--> 순교자 열전에서는

천주교회 총회장 최창현 요한이 20년을 한결같이 보낸 신앙생활과 덕망이 높은 그를 모든 신자들이 신뢰하였던 인간적인 삶을 포함하여

많은 순교자들의 순교 사실을 포함하여 신앙 상황을 자세히 서술하였습니다.


넷째,

--> 순교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구베아 주교를 통하여 세계를 향해 교회의 재건과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한 다섯 가지 방안을 제시하였는데

여기에 주교를 통해 교황이 중국의 황제에게 부탁해서 

 조선에서 선교사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외교적 압력을 가해달라는 방법을 제시하며 

 그 방법의 예로 서양 선박과 군대, 무력으로 시위하며 천주교회 신부를 위시한 신자를 죽인 죄를 묻고

조선 당국과 전교 문제를 교섭할 수 있도록 도움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황사영 알렉시오의 일생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출생과 입교


황사영(黃嗣永, 1775-1801, 알렉시오)은 남인이었던 창원(昌原) 황씨(黃氏) 판윤공파(判尹公派)가문에서 황석범(黃錫範)과 이윤혜(李允惠)의 유복자로 서울 아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5세 때인 1790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습니다.

이어 그는 같은 해 복자 정약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의 맏형 정약현(丁若鉉)의 큰 딸 정명련(丁命連, 일명 난주[蘭珠]) 마리아와 혼인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천주교를 접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같은 해에 처삼촌들과 처고모부 이승훈(李承薰) 베드로 등에게서 천주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습니다.

 

2. 천주교 세례


입교 이후 황사영은 임금이 약속했던 관직도 버리고 밤낮으로 교리를 연구하였습니다. .

그리고 정약종, 홍낙민(洪樂敏) 등과 함께 토론하면서 신앙을 키워나갔습니다.

1795, 20세가 된 황사영은 최인길(崔仁吉)의 집에서 주문모 신부를 만나 신앙을 고백하고 알렉시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3. 신앙생활과 백서 작성


세례를 받은 이후 황사영은 있는 힘을 다하여 주문모 신부의 성직 수행과 다른 온갖 일들을 도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진리의 증거를 위해 투신하며,

교회를 위해 어떠한 위험도 무릅쓰고 사제와 신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주문모 신부와 정약종, 최창현, 홍낙민 등 교회 지도자들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선 땅의 신앙의 빛을 이어가겠다는 마지막 일념으로 토굴에서 백서를 작성하였습니다.

 

4. 체포와 백서 작성 목적


박해자들로부터 체포되어 의금부로 압송된 황사영은 1114(음력 109)부터 신문을 받았습니다.

이때 그는 천주교는 올바르며, 나라와 백성에게 해가 되지 않는 종교입니다.”라고 하면서 신앙을 굳게 증거하였고,

“<백서>를 작성한 목적은 신앙의 자유를 얻으려는 데 있었다.”라고 설명하였습니다.

 

5. 순교


황사영은 18011210(음력 115)에 대역부도(大逆不道)의 판결을 받고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사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6세였습니다.

 

6. 시복 진행


황사영은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에 포함되어

2013년에 하느님의 종으로 선포되어 현재 시복을 위한 예비심사가 바티칸 교황청 시성성에서 진행 중입니다.

 

<황사영 순교순례지 자료 및 여진천 신부 역, ‘하느님의 종 황사영(알렉시오)과 백서참조>


아래 네이버 지식인링크로 들어가면 황사영 백서와 관련한 다양한 질문들이 있습니다.


댓글 7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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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규 야고보님의 댓글

장명규 야고보 작성일

2000년부터 3년여간 배론성지에서 순례 오신분들께 성지안내를 해드렸었습니다. 여진천신부님께 몇몇신자분들과 함께 안내교육을 받고서 황사영토굴, 성요셉신학당,최양업신부묘소를 순례자분들과 걸으며 적은지식을 이야기 했었네요.
백서내용 다시 읽으며 그시절을 잠시 떠올렸습니다.

백서 크기는 바로잡습니다.
흰비단 62×38cm
글자수 13,311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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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울관리자님의 댓글의 댓글

동서울관리자 작성일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백서의 글자수는 여진천 신부님이 쓰신 '하느님의 종 황사영(알렉시오)과 백서' 책에 있는 내용으로 13,384자로 되어 있어 그대로 인용한 것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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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규 야고보님의 댓글의 댓글

장명규 야고보 작성일

예,, 저의 착오입니다.
"황사영 백서의 원본과 이본에 관한연구 2005년 여진천" 논문집 16-18쪽에 그렇게 되어 있네요. 가로×세로 62×39.1-40cm / 글자수 13,384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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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카타리나님의 댓글

한카타리나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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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카타리나님의 댓글

김카타리나 작성일

마음으로  감사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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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카타리나님의 댓글

김카타리나 작성일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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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안나님의 댓글

김안나 작성일

순교하신 분들의 뜻을 본받아
열심히 신앙생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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