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록일202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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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선) 천주교회는 1784년 이승훈이 북경의 북당(北堂)에서 그라몽 신부로부터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받음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그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이승훈의 북경 방문
• 조선시대인 1783년 겨울, 이벽은 평소 천주교 서적의 부족으로 천주교 신앙과 교리를 깊이 파악할 수 없어 안타까워하던 차에 • 이승훈이 북경에 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 이벽은 이승훈을 찾아가서 천주교 교리의 요점을 설명한 후, 북경에 가거든 천주당을 찾아가 선교사에게 교리를 배워 세례를 받고, • 종교예식을 소상하게 알아볼 뿐만 아니라 필요한 서적을 얻어 오도록 요청하였습니다. • 이승훈은 1783년 10월 24일 북경을 향해 떠났습니다. |
2. 이승훈의 세례
• 이승훈은 북경에 간 일차적인 목적은 수학을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 이승훈은 북경에 있던 4개의 성당 중에서 북당(北堂)을 찾아갔습니다. • 그곳에는 수학자를 비롯하여 학자 선교사들이 가장 많이 있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 이승훈은 선교사들에게 필담으로 수학을 배웠고, 선교사들은 틈틈이 천주교 교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 그는 천주교 교리에 큰 감동을 받고 영세할 결심을 굳히고는 아버지 이동욱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 그리고 귀국하기 전 1784년 1월 말경 궁정(宮廷) 수학자로 활약하던 그라몽 신부로부터 북당에서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 그의 나이 27세였습니다. • 그는 세례명대로 조선교회의 반석이 된 것입니다. • 이승훈은 영세 때 이미 자기가 겪을 박해를 예견하였던 것입니다. |
3. 이승훈의 귀국
• 이승훈은 귀국해서 임금이 배교를 요구할 경우 차라리 형벌과 죽음을 감수할 것이고, • 또한 결코 첩을 두지 않겠으며, • 귀국하면 가족과 함께 영혼을 구하는 일에만 전심하겠다는 등 확고한 회개의 마음을 표명하였습니다. • 이승훈은 귀국하면서 많은 천주교 서적과 십자가, 상본(성화)을 가지고 왔습니다. • 그는 1784년 3월 24일경(음력) 서울에 도착한 즉시 이 책들을 이벽에게 전달하였습니다. • 이벽은 이 책들을 통하여 여러 해 동안 교리를 공부하면서 답답하였던 신앙 문제들을 해결하였습니다. • 이벽이 친척과 친구들을 대상으로 설교하자 당대의 유명한 학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 이벽으로부터 교리를 들은 후 정약전은 ‘대과(大科)는 나의 뜻이 아니다’며 이벽을 따라 신학문과 천주교에 깊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
4. 한국 천주교의 창설과 최초의 세례
• 1784년 9월(음력) 서울 수표동 이벽의 집에서는 한국천주교회사의 기원을 이루는 예식이 있었습니다. • 이승훈으로부터 이벽은 세례자 요한으로, • 권일신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 이 세례명에도 깊은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 이벽은 한국의 개종 사업을 시작하여 구세주께서 오시는 길을 준비하였으므로 세례자 요한이라 하였고, • 권일신은 복음 전파에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동양의 사도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을 보호자로 모시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 권일신은 자신의 구령에 만족하지 않고 친지와 친척들에게 신앙을 전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
5. 한국 천주교 창설후의 교세 확장
• 이렇게 자생적으로 교회가 창설된 후 이벽의 집은 신앙 집회장이 되었습니다. • 이들은 자신들의 신앙생활을 경건하게 실천하면서 혈연, 학벌, 당색 등으로 연결된 주위 사람들에게 전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정약전, 정약용 형제와 같은 양반 계급과 최인길(마티아), 김범우(토마스), 최창현(요한)과 같은 중인 계급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입교하였습니다. • 김범우는 일찍부터 이벽과 가까운 사이여서 그와 함께 이승훈으로부터 넘겨받은 교리서를 검토하여 왔었습니다. • 김범우는 세례를 받자 자신의 집을 신앙 집회의 장소로 제공하여 1784년 겨울부터 신앙 집회인 첨례(瞻禮, 예배보는 일)를 보았습니다. • 김범우의 동생들 중 셋째 동생 이우(履禹)와 일곱째 동생 현우(顯禹)를 비롯하여 자신과 같은 중인계층에 전교하여, 많은 사람들이 입교하였습니다. • 특히 전국 방방곡곡에 제자들을 갖고 있던 권일신은 직접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 동시에 입교한 제자들을 통해서 충청도와 전라도 지방에 천주교의 신앙을 심었습니다. • 충청도의 사도로서 처음으로 내포지방에 교회를 세워 교세를 확장한 이존창(곤자가의 루도비꼬)과 • 전라도의 사도라고 불리우는 유항검(아우구스띠노)은 모두 권일신의 제자로서 스승에게 교리를 배우고 입교하였습니다. • 이승훈의 진술에 의하면, 1784년부터 1785년 1년 동 안에 신자의 수효가 1천여 명에 달하였고, 교세의 범위도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
위와 같이 한국의 천주교회는 교회가 없는 곳에서 한두 사람이 자발적으로 신앙생활을 실천하며 탄생한 경우는 세계교회 사상 유례가 없는 한국교회에만 있는 독특한 사건으로 선교사 없이 자생적으로 탄생하여 설립되게 됩니다.
이후
▶ 1784년부터 지금의 서울 명동에 있었던 명례방 앞에 있던 김범우 집에서 종교 집회를 갖게 되는데
▶ 이는 박해의 시초가 되는 '명례방 사건'과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曺摘發事件)'으로 이어집니다.
<공세리성지성당 자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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